- 알면 더 맛있다, 발로 쓴 사케 이야기
니가타 사케, 왜 맛있다는 걸까?
1. 최고의 쌀이 최고의 술이 되는 건 아니지만,
최고의 술은 최고의 쌀을 필요로 한다!
겨울이면 3m 넘게 눈이 쌓이고, 그 눈 녹은 물이 강에 흘러들러, 니가타의 평야를 비옥하게 만드는데, 니가타에는 무려 8개의 강이 지난다. 그중 시나노강은 일본에서 가장 긴 강이다. 니가타가 일본의 대표적인 쌀 산지일 수밖에 없다.
일본 최대 쌀 축제 '니가타 사케노진이 해마다 개최되는 도키멧세 컨벤션은 바로 시나노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에 지어졌는데, 이곳에서 축제가 개최되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쌀품종 고시하카리의 고향도 바로 니가타다.
식용 쌀과 더불어 양조용 쌀의 재배도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다. 대표적인 품종이 1957년 탄생한 '고햐쿠만고쿠(五百万石)'인데, 일본의 대표적 주조호적미(酒造好適米)인 '야마다니시키(山田錦)'와 업치락뒤치락 쌍벽을 이룬다.
오백만석(75만톤)이란 뜻의 '고햐쿠만고쿠'란 명칭은 1957년 니가타의 쌀 생산량이 500만석을 돌파한 것은 기념해 붙여졌는데, 니가타 사케의 '탄레이(淡麗)'란 특징을 갖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일본에서 쌍벽을 이루는 주조호적미인 '야마다니시키'와 '고햐쿠만고쿠'를 교배하는 15년간의 연구 끝에 2004년 '코시탄레이(越淡麗)'란 신품종 주조호적미를 세상에 내놓는다. '코시(越)'는 니가타의 옛 이름, 탄레이(淡麗)가 니가타 사케를 일본의 대표 사케로 이끈 상징적 단어인데, 보란 듯이 대놓고 그것을 쌀의 품종명으로 등록한 것.

그래서 니가타는, 식용쌀이든, 양조용쌀이든 대단한 자부를 갖고 있다. 최고의 쌀이 꼭 최고의 사케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최고의 사케를 만드는데 최고의 쌀이 결정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 눈이 녹으며 생성된 연수
부드럽고 담백한 사케의 비결
우리 막걸리도 마찬가지지만, 사케의 주질에 있어 쌀 만큼이나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로 물이다.
니가타 사케 역시 물의 영향이 주질을 형성하는데 있어 결정적이다. 막걸리는 곡물이 질감이 입안에 함께 머물지만, 질감 대신 맛과 향에만 더욱 예민한 사케(사실 '사케'는 일본 술에 대한 통칭이지만, 여기서는 '세이슈(清酒, 청주)로 국한한다)의 경우 물의 중요성이 탁주보다는 더 클 수 있다.
그런데, 물에는 경수와 연수의 구별이 있다. 경수는 칼슘과 마그네슘 등 미네랄이 많으며 경도가 높은 것을 말한다. 연수는 그 반대다.
경수의 미네랄 성분이 양조 과정에서 효모의 영양원이 되며 발효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과 달리, 미네랄 성분이 적은 연수는 발효에 시간이 좀 더 걸리지만 부드럽게 발효되며 담백한 술이 된다는 것이다.

니가타의 물은 눈이 녹아 생성된 연수로 평균적인 경도는 40 정도라고 한다.
때문에 '담백한 카라구치(淡麗辛口)'로 규정되는 니가타 사케는 '고햐쿠만고쿠'와 '코시탄레이'로 대표되는 니가타 주조호적미, 그리고 눈이 녹아 생성된 니가타 연수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
3.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은 자연 환경
장기 저온 발효에 적극 활용
니가타는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하다. 보통 겨울철 3m는 기본이라고 하는데, 4m 이상의 눈이 내리는 산간지방도 있다고 한다.
필자는 실제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겨울 시즌 성수기라 할 수 있는 지난 1월 23일 필자는 4박5일 일정으로 홋카이도 여행을 갔었다. 사실 홋카이도 술에 대한 관심 때문에 떠난 여행이었는데, SNS를 달구고 있는 홋카이도 설경에 대한 기대감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눈을 거의 보지 못했다. 패딩이 거추장스러울 정도였다. 삿포로나 오타루보다 훨씬 내륙인 비에이에 가서야 겨우 진눈개비같은 눈을 만났다.
그런데, 3월 8일의 니가타 사케노진 탐방을 위해 니가타에 미리 들어간 이틀 전날, 우연히 일본 현지TV의 일기예보를 보게 되었다. 그야말로 깜놀! 니가타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야마가타나 아오모리, 홋카이도까지 일본 전역이 모두 '흐림'이었는데, 니가타 현만 '눈' 아닌가!
그날 니가타에서 가장 높은 도키멧세 컨벤션에 위치한 호텔닛코 31층 객실에 묵었다. 일본에서 가장 긴 시나노강과 바다가 만나는 광할한 전망이 막힘 없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서쪽 방향으로 직진하면 강원도 양양이 나오려나.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 아무래도 눈이 올 날씨는 아니었다. 그러데 새벽 즈음 서쪽에서 바람과 구름이 몰려오며 순식간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먼바다에서부터 '시커먼 것'들이 밀려오는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니가타의 기후환경이 실제 그렇다. 동해를 건너온 습기를 가득 머금은 구름이 해발 2,000m 이상이 고산이 수두룩한 니가타현 에치고(越後)산맥(제주도 한라산의 높이는 해발 1,950m)에 이르러 엄청난 양의 눈을 토해낸다.
그런데 이렇게 쌓인 눈에 의해 만들어진 저온의 환경은 공기를 정화시키고 잡균의 번식을 막아 누룩곰팡이와 효모균 등 미생물의 활동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긴 겨울 이러한 환경은 장기저온 발효에 최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니가타에는 '유키무로(雪室: 눈을 이용한 저장고)를 양조장 내에 만들어, 사케를 저온숙성하는 양조장들도 많다. 그러한 모습을 보기 위해 핫카이산주조(八海山酒造)가 있는 미나미우오누마 작은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도 끊이지 않는다.
4. '에치고 토지(越後杜氏)'라 불리는 사케의 장인들
전통을 잇기 위한 관심과 노력
소제목을 달아놓고 보니, 약간 홍보성 카피 느낌이 쌀짝 나는데, 눈꼽만큼도 그렇지 않음을 먼저 밝힌다.
2024년 12월 5일, 일본은 '일본 전통술 빚기 기술'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 쾌거를 이룬다. 우리나라에서도 막걸리의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일찍이 차근차근 준비해온 일본이 훨씬 빨랐다.
일본의 전통 술빚기 기술은 근대 과학의 보급 이전부터 '토지(杜氏)'라 불린 '일본의 전통적 사케 제조 장인(또는 그룹)'이 경험의 축적을 통해 찾아내서 수작업으로 쌓아올린 결과물이다.
오늘날에 '토지'는 술맛과 제조법을 정하고 제조공정을 총괄하는 주조책임자를 말하는데, 매우 오래된 지역별 계파 역사를 갖고 있어 집단만의 기술 정보를 공유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
그런데 일본이라는 거대한 사케왕국의 수면 아래에는 크게 대표적 3대 계파가 존재한다.
니가타 현의 '에치고 토지(越後杜氏)' 이와테 현의 '난부 토지(南部杜氏), 그리고 효고 현의 '단바 토지(丹波杜氏)'다.
'에치고 토지'의 발상지인 니가타에는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시대까지 약 2만명의 사케 제조 종사자(酒男)가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에치고의 사케 장인집단으로 성장하며, 주변 지역(26개 도도부현)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활약한다.
수작업으로 하던 제조공정에 기계화가 도입되며, 사케 종사자의 수는 훨씬 줄었지만, 에치고 사케 장인의 명맥은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이어진다.

에치고류(越後流) 기술을 한층 더 발전시키기 위해 '니가타현 양조 시험장'이 1930년 설립되어 니가타 사케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도록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해온 것. 사케를 전문으로 하는 현립연구기관으로는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1984년에는 '니가타 사케 학교'가 설립되어 양조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에치고 장인의 기술과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신념으로 운영중인데, 이 또한 전국 유일의 '양조인 학교'라고 한다.
또한 지자체에 '사케진흥실'이란 조직을 둔 것도 니가타 현이 유일하다고 한다.

니가타의 쌀, 물, 자연....그것만으로 저절로 니가타 사케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최고의 사케를 위한 장인들의 열정, 그리고 전통을 계승하며 최고의 자리를 지키려는 관계자와 지자체의 관심과 노력이 있었기에 비로서 오늘날의 니가타 사케를 만들졌다고 할 수 있는 것.
한편 니가타에서는, 영연방이 4년마다 그들만의 스포츠제전을 하는 것처럼, 매년 4월 '에치고류越後流'라는 독자적인 품평회를 개최, 제조 기술을 겨루며 니가타 사케의 깃발 아래 결속력를 다지고 있다.
'탄레이 카라구치(淡麗辛口)'로 입맛을 사로잡다!
태평양전쟁의 패전 이후 일본인의 삶은 피폐했다. (그래야만 했다) 전범이 저지른 전쟁이지만, 서민 역시 함께 책임을 져야만 했던 것. 서민들은 팍팍한 삶을 견뎌내기 위해 농후하면서도 달콤한 술을 즐겼다.
전후 빠른 복구가 진행되고, 경제가 발전하며 입맛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때 우리 막걸리도 버림 받았든 고루한 일본 사케(한국에서와 달리 일본에서는 사케가 술의 통칭이니, 정확하게는 니혼슈(日本酒) 또는 세이슈(清酒)) 대신 맥주 등 세련된 주종이 각광받는다.
그러다 한창 먹고살 만했던 1990년대 초반 '지자케(地酒)' 바람이 분다. 당시 지역에서 주로 소비됐던 니가타 사케가 일약 전국구 스타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런데, '일약'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니가타 사케는 새로운 흐름을 이끌 모든 준비가 마쳐진 지자케였다. 앞서 언급했던 오랜 역사에 지역에 기반을 둔 탄탄한 소비와 인지도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사케의 새로운 트렌드가 될 상품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탄레이(淡麗, 우리식으로 읽으면 '담려')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의 술을 만드는 주조호적미 '고햐쿠만고쿠(五百万石)'을 높은 정미비율로 가공하고, 여기에 니가타의 눈 녹은 연수를 더하며, 니가타 특유의 자연환경을 활용한 오랜 시간 동안의 저온발효를 통해 '니가타 탄레이'를 구현해낸 것.
탄레이(淡麗)에 해당하는 우리 말은 '경쾌' '깔끔' '깨끗' '담백'이다.
한편 일본 사케에는 단맛의 정도를 표현하는 단어도 있는데, '아마구치(甘口)'와 '카라구치(辛口)'다.
일본어로 '아마이(甘い)'는 '달다'라는 뜻이고, '카라이(辛い)'는 맵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마구치는 '단맛'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농심 신라면에서 쓰이는 매울 신(辛)이 들어가는 사케맛은, 술에 고춧가루를 뿌렸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의 카라이는 아마이의 반대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아마이가 스위트(sweet)라면, 카라이는 드라이(dry)다.
혹시 아사히 슈퍼드라이 캔맥주를 본 적 있는가? 은색 캔 표면의 제품명 아래 '辛口'라는 글짜가 큼지막하게 박혀있다. 매운 맥주가 아니고 매우 '드라이'한 맥주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니가타 사케는 '탄레이 카라구치(淡麗辛口)'로 사케의 새로운 트렌드이자 대세가 된다.
니가타 '탄레이 카라구치(淡麗辛口)' 붐을 이끈 선봉에 그 유명한 '구보타(久保田)’ ‘핫카이산(八海山)’ ‘코시노칸바이(越の寒梅)’ '시메하리츠루(〆張鶴)' 등이 있었다.
니가타 탄레이 카라구치는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먹혔다. 한국의 많은 주당들도 술이 단것을 싫어한다. 담백하고 드라이한 니가타 사케가 한국에서도 여전히 인기있는 이유다.
니가타 사케의 평균 정미보합율은 일본 평균 67.6% 보다 높은 58.7%다. 한국인들이 최근에 선호하는 '닷사이23'에서 보듯 일반적으로 정미보합율이 낮을수록 고급 사케로 인정받는다.
그 옛날 사계 장인그룹 계파인 '에치고 토지(越後杜氏)'가 일본을 휩쓸었듯, 바야흐로 니가타 탄레이 카라구치(淡麗辛口)' 사케의 대명사로 각광받으며 세상에 우뚝서는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사랑도 움직이는데,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
위기에 빠진 니가타 사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comming soon~
*쿠키사진 : 본의 아니게 일본 술 사진만 잔뜩 보여주게 된 죄송한 마음에 니가타에서 만난 우리 술 사진으로 마무리한다.
니가타 피아반다이 리쿼마켓, 막걸리 비싸게 팔린다.






